대상판결은 일관되게 반성 내지 사죄내용을 포함하는 시말서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사용자는 이러한 시말서 제출 불응을 이유로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징계가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이러한 판결내용을 통해 시말서의 의미를 명확히 해 주고 있으며 무분별한 시말서 제출요구의 관행, 잘못된 시말서 관련 규정내용이나 의식을 바로 잡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의미 있는 판결로 생각된다.
Ⅰ. 사실관계
(1) 이 사건 근로자(이하 甲이라 한다)는 이 사건 복지재단(이하 乙이라 한다)과 2006년 8월 7일에 직급 및 직위를 4급 1호로 하는 사회복지사로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 이 근로계약에는 근무장소를 복지관으로 하되 운영상 필요에 따라 직종이나 근무장소를 변경할 수 있다는 사항을 담고 있었다. 이후 2007년 2월 27일 乙은 직업재활사업 분야에서 경기도가 계획하는 정신지체장애인 및 발달장애인들의 여가선용 및 직업재활을 위한 영농학습장 운영 프로그램(이하 “재활프로그램”이라 함)에 선정되었다.
(2) 당시 직업재활팀 인원은 단 2명뿐이었기 때문에, 乙은 보호작업장 근로자의 업무분장을 검토한 결과, 甲이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가장 적어 甲에게 주2회 8시간씩 재활프로그램 종료시까지 직업재활팀에서 근무하도록 2007년 3월 16일 명하였다. 재활프로그램 현장은 복지관에서 3~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영농학습장이며, 출근 후에 복지관의 차량으로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였다.
(3) 그러나 甲은 乙의 이러한 파견근무명령에 응하지 않았고, 乙은 2007년 4월 3일 甲에게 업무지시 불이행에 따른 주의조치와 함께 시말서를 4월 5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하였으나 甲은 이에도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에 乙은 2007년 4월 13일 복지관 인사규정 제48조 1항 4호(정당한 사유 없이 상사의 직무상의 명령에 항거 또는 불복한 때)에 의하여 인사위원회에 징계를 요구하였고, 인사위원회는 소명의 기회를 부여한 뒤에 4월 20일 시말서 제출과 함께 가장 낮은 징계인 견책을 결정하여 4월 23일 통보하였다.
(4) 이에 대하여 甲은 乙이 재활프로그램 선정에 따른 인원부족을 복지관 업무운영차원에서 해결해야 함에도 재활프로그램과 무관한 보호작업장의 인력을 파견하여 해결하려 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사전 설명도 없이 파견을 진행하여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을 이유로 한 시말서 제출요구는 정당하지 않으며 이를 거부한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없고, 그로 인한 업무상 차질도 발생한 바가 없으며 기존 다른 근로자와의 형평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들어 견책처분에 대하여 부당징계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2007년 5월 4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제기하였다.
Ⅱ. 사건의 경과
(1) 경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근로자에 대한 전보나 전직은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권한에 속하며 상당한 재량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나 권리남용에 해당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무효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甲이 乙과 맺은 근로계약상 근로장소가 특정되어 있지 않고, 조직규정 제6조 단서에서도 관장이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한 경우 업무분장의 일부를 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장소의 변경에 甲의 사전동의가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권리남용 여부에 대하여 노동위원회는 추가직원 선정의 필요성과 업무적으로 가장 유사한 보호작업장 소속 직원의 업무시간 분석을 통한 대상자 선정 및 다른 근로조건의 불이익 없이 주 2회 8시간 재활프로그램 종료시까지만 파견근무토록 결정한 점에 비추어 볼 때, 3~4km 떨어진 곳에서 근무해야 하는 이 파견근무명령이 권리남용으로 판단될 정도로 통상적인 감수한도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이 파견근무명령이 부당하다고 볼 수 없는 이상, 시말서 제출요구나 이에 따르지 않는 것을 이유로 한 징계를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보았다.
(2) 이에 대하여 행정법원 역시 파견근무명령이 노동위원회의 판단과 같이 권리남용으로 보이지 않고 정당한 업무명령에 해당하며, 따라서 이에 따르지 않은 甲의 행위는 인사규정 제48조 1항 4호 및 복무규정 제4조를 위반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서울행정법원 2008.7.17. 선고 2007구합46005 판결).
그러나 시말서 제출 불응에 따른 징계에 대해서는 노동위원회와 판단을 달리하였다. 시말서가 사고나 비위행위에 연루된 근로자가 그 일의 경위·전말을 자세히 적어서 제출하는 경위서를 의미하는 경우라면 근로계약에 부수하는 신의칙상 시말서 제출은 사용자의 조사에 협조하기 위한 근로자의 정당한 의무이고 이의 불응은 징계사유가 되지만, 시말서가 사고를 일으킨 자가 그 보고와 사죄를 위하여 그간의 사정을 적어서 제출하는 사죄문·반성문을 의미하는 경우라면 시말서 제출요구는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법한 업무명령으로 이의 불이행을 독립한 징계사유 또는 징계양정의 가중사유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乙은 이미 조사를 마친 후에 파견근무명령을 위반한 행위가 징계사유에 미치지 않는 질서유지를 해하는 경미한 행위라고 판단하여 인사규정 제47조에서 정한 주의조치를 하면서 비로소 시말서 제출을 요구하였고, 인사규정 제47조는 ‘반성의 계기’가 되도록 시말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건 시말서 제출요구는 파견근무명령 불응에 대한 반성과 사죄의 내용을 포함하여 작성·제출하라는 의미라고 행정법원은 판단하였다. 따라서 이 시말서 제출요구는 위법한 업무명령에 해당하고, 이에 불응하였음을 독립된 징계사유로 삼는 것은 위법하다고 보았으며, 결과적으로 견책의 징계는 징계재량권범위를 일탈·남용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3) 이러한 행정법원의 판단에 대하여 고등법원(서울고등법원 2009.4.14. 선고 2008누23834)과 대법원(대법원 2010.1.14. 선고 2009두6605 판결)은 그 정당성을 인정하였다.
Ⅲ. 평 석
1. 판결내용의 검토 분석
a)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
헌법 제19조에서 규정한 양심의 자유의 보호영역으로는 양심형성의 자유와 함께 형성된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양심활동의 자유를 포함한다. 그리고 양심활동의 자유의 내용에는 형성된 양심을 표명하지 않거나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을 소극적 자유를 포함하고, 이러한 소극적 자유에는 양심을 언어와 행동으로 표명하도록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와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된다.1)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양심상 승복할 수 없는 사죄광고를 명하는 판결을 강제집행하는 경우, 이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의 침해로서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2)
그러나 양심을 이유로 일정한 행동을 거부함으로써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자신의 자율적 의사결정에 의하여 형성된 법률관계에서의 의무를 위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컨대 근로자가 자신의 양심을 이유로 근로계약상의 노무제공의무를 거부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계약이행의무를 전제로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를 어떠한 경우에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가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3) 결국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는 모든 경우에 획일적으로 인정하기는 어렵고 사안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다.
b) 반성·사죄 내용의 시말서 제출요구와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
법원은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요구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죄문 또는 반성문을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하는 취지라면 이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법한 업무명령으로 판단하였다.4) 따라서 이러한 위법한 시말서 제출요구에 불응하여 시말서를 제출하지 않은 행위를 독립된 징계사유 또는 징계양정의 가중사유로 판단함은 허용될 수 없다고 하여 견책의 징계처분이 부당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법원이 반성과 사죄의 내용을 포함하는 시말서의 제출을 강제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시말서 제출요구에 근로자가 불응했다고 하여 이를 징계 또는 징계가중사유로 삼을 수는 없다고 판단한 점은 수긍이 된다. 그러나 사안에서 인사규정 제47조의 규정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효의 규정인지에 대하여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인사규정 제47조 제1항은 “직원이 행한 행위가 징계사유에 미치지 아니하고 조직의 질서유지에 위배될 수 있는 경미한 행위를 한 경우 부서장은 해당직원에게 지적사항을 시정하고 반성의 계기가 되도록 시말서와 함께 주의를 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 규정내용에 비추어 여기서의 시말서는 반성·사죄의 시말서를 의미하므로 무효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규정이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규정, 즉 반성과 사죄의 내용을 담은 시말서를 의미하고, 실제로 이러한 시말서의 제출을 요구하였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행정법원에서는 주의조치를 하면서 시말서 제출을 요구한 점과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하여 시말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에 비추어 반성과 사죄의 내용을 포함하는 문서를 작성하여 제출하라는 의미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반성의 계기”라는 내용이 해당근거규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주의조치를 하면서 시말서 제출을 요구한 점은 반성이나 사죄내용의 시말서로 볼 수 있는 중요한 추단근거가 되는 것은 분명하나, 규정의 전체내용에 비추어 시말서보다 주의조치로 반성의 계기를 삼고자 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없지 않다고 생각된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는 일단 적어도 파견근무명령에 불응하는 이유라도 적어서 제출하여야 하고 이에 대해 사용자가 반성이나 사죄의 내용을 적어서 내도록 요구한다면 이를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으며, 이를 이유로 징계나 징계가중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c) 징계양정의 합리성
법원은 파견근무명령에 불응한 근로자의 행위는 정당한 업무명령을 거부한 것으로서 인사규정과 복무규정에 정한 징계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도 징계종류 중 가장 낮은 징계인 견책이 징계재량범위를 일탈·남용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사용자는 파견근무명령 불응에 대하여 이미 주의조치를 했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다시 견책조치를 할 수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몰라도 견책이 징계양정을 일탈·남용한 것으로 판단될 수 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2. 판결의 의미
이 사안에서 법원은 일관되게 반성 내지 사죄내용을 포함하는 시말서의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므로 사용자는 이러한 시말서 제출 불응을 이유로 근로자를 징계하거나 징계가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주고 있다. 이러한 판결내용을 통해 시말서의 의미를 명확히 해 주고 있으며 무분별한 시말서 제출 요구의 관행, 잘못된 시말서 관련 규정내용이나 의식을 바로 잡는 계기를 마련해 준 의미 있는 판결로 생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판결의 의미를 오해하거나 확대해석하여 징계와 관련하여서는 시말서 요구를 아예 할 수 없다거나 시말서 내용에 반성과 사죄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면, 이는 반성문 내지 사죄문으로서의 시말서로서 무효라고 판단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근로자의 양심의 자유에 비추어 사용자는 반성이나 사죄내용을 담은 시말서 제출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시말서 미제출은 근로자에 대한 징계나 징계가중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점이 판례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용자의 시말서 제출요구에 대하여 사고의 경위나 징계에 관련된 자신의 입장만을 담아 제출할 수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징계결정의 참고자료로 하고자 반성과 사죄의 뜻을 담아 제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컨대, 사용자는 적어도 직장질서나 근로계약상의 의무위반에 관련된 사실확인 차원에서 시말서를 작성·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가능하나 근로자의 양심상의 판단과 결정에 상관없이 반성이나 사죄의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다. 결국 경위서나 사실확인서로서의 시말서는 사용자가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이고, 반성과 사죄 내용의 시말서는 근로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의사에 따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말서에 대한 용어정비도 필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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