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들이 값싼 인건비를 노리고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홀로 전근을 가는 아빠들이 크게 늘었다.
낯설고 물 설은 타국에서의 독신생활은 건강에 좋지 않다. 장기간 해외근무로 심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를 느낀 노동자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면 업무상재해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
해외부임 7개월째, 뇌출혈로 사망
ㅇ섬유회사에 79년 입사한 박(사망당시 48세)씨는 97년 협력회사가 중국 호북성 황석시에 합작공장(미경섬유)을 짓자 제작기술지원팀으로 혈혈단신 부임했다. 그의 회사는 2년간 미경섬유에 폴리에스터 생산기술을 이전하는 대신 협력회사로부터 250만달러의 기술료를 받기로 했다.
박씨는 98년 6월 미경섬유의 조직개편에 따라 직무사업본부 소속으로 인사발령이 났지만, 서울 본사로부터 업무지시를 직접 받았다. 월급지급은 물론 각종 세금공제도 서울에 있는 회사가 담당했다.
98년 6월28일 공장 개업식을 앞두고 박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중국 현지 노동자들이 기계 조작법을 완전 숙지하지 못해 사소한 고장도 그가 직접 처리해야 했다.
박씨는 공장개업 나흘을 앞둔 24일 오후 6시 퇴근한 후 심한 두통을 앓았다. 자정 무렵에야 우황청심환을 먹고 잠들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날 시신으로 발견됐다.
박씨의 사인은 뇌출혈(고혈압과 지주막하출혈)로 밝혀졌다. ㅇ섬유회사는 일단 박씨의 사망을 업무상재해로 보고, 먼저 유족에게 1억4천700만원을 지급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대체지급보험급여금을 청구했다. 공단은 박씨가 중국의 미경섬유로부터 복무관리를 받았으므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했고, 그의 회사는 소송을 냈다.
해외근무자의 산재보험 적용 여부
이 사건의 원고는 ㅇ섬유회사이고, 피고는 근로복지공단이다. 서울행정법원은 박씨가 산재보험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판결요지는 이러하다.
“구 산재법(99년 12월 개정 이전)에서 말하는 ‘사업’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내에서 행해지는 것만을 의미한다. 국내의 사업주와 산재보험 관계가 성립한 근로자가 국외에 파견돼 일할 경우 근무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근로의 장소가 국외에 있는 것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국내의 사업에 소속돼 사용자의 지휘에 따라 일할 경우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다.
또 장기간의 해외근무 및 독신생활, 언어소통장애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고혈압 등의 질병을 유발 또는 촉진시킨 원인으로 추단된다. 따라서 박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
이 사건에서 핵심은 박씨의 해외근무를 출장으로 볼 것인가, 파견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해외출장에 해당한다면 국내의 사업과 마찬가지로 절차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해외파견의 경우 그렇지 않다. 대부분 국가가 속지주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에 현지국가의 보험적용을 받는다. 노동부가 중국 공장이전이 활발해지면서 산재보상을 둘러싼 다툼이 늘어나자 99년 12월 해외파견자도 임의가입할 수 있는 특례조항이 제정했다.
재판부는 해외출장과 해외파견 간의 차이를 국내 혹은 국외에서 근무했느냐가 아니라 근로의 실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실질사용자가 누구인가를 통해 판단한다. 이 사건에서 박씨는 서울 본사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고 복무지휘에 따라 근무했기 때문에 재판부는 해외출장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관련판례>
서울행법 2002년 5월30일 선고 2001구13446 대체지급보험급여금지급청구서반려처분취소
서울고등법원 2003년 5월30일 2002누9614 항소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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